하이텔을 그리며

제3화 존재해서는 안 될 사람

갈등하는 젊은이 2026. 8. 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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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된 개입 횟수를 초과했습니다."
휴대폰 화면에 떠 있던 문장은 몇 초 만에 사라졌다.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통화기록을 확인했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미쳐 가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분명 시간을 넘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걸 막으려 하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어머니를 찾아갔다.
평범한 안부를 묻는 척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응?"
"나 어렸을 때 이상한 말 많이 했어?"
어머니는 웃었다.
"너?"
잠시 생각하던 어머니가 피식 웃었다.
"별 얘기를 다 했지."
"예를 들면?"
"맨날 전화 아저씨가 알려줬다고 하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기억나?"
"그럼."
어머니는 장난처럼 이야기했지만 내 귀에는 한마디 한마디가 망치처럼 들렸다.
"혼자서 누구랑 대화도 많이 했잖아."
"누구랑?"
"키 큰 아저씨."
"..."
"난 상상 친구인 줄 알았지."
어머니는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사진도 있잖아."
"무슨 사진?"
어머니는 오래된 앨범을 꺼내 왔다.
첫 돌.
유치원 운동회.
가족여행.
사진을 넘기던 중 한 장에서 손이 멈췄다.
놀이공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어머니와 내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뒤.
수십 명의 사람들 사이.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희미하게 흔들려 있었다.
마치 사진이 그 사람만 거부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상했다.
남자의 시선은 카메라가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확대했다.
화질은 깨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왼손목.
검은 시계.
며칠 전 거실에서 마주친 노인이 차고 있던 것과 똑같은 시계였다.
"엄마."
"...응?"
"이 사람 누구야?"
어머니는 사진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왜?"
"이 사람...
원래 없었는데."
순간 등골이 얼어붙었다.
 
그날 밤.
휴대폰이 울렸다.
"사진을 봤구나."
"...당신이었어?"
"아니."
"아니?"
"그 사람은...
나도 찾고 있는 사람이다."
"...거짓말."
"믿지 않아도 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절대로 그 사람을 먼저 찾으려고 하지 마."
"왜?"
"네가 먼저 만나면...
모든 순서가 무너진다."
"순서?"
"인과율."
그 단어를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그날 이후 나는 '인과율'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논문.
물리학.
철학.
종교.
시간여행 이론.
읽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읽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 구석에 오래된 글 하나를 발견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닫힌 고리다.'
작성자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에 과거가 만들어진다.'
나는 몇 번이나 그 문장을 읽었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문장이었다.
마치 누군가 오래전에 내게 들려준 이야기처럼.
 
며칠 후.
어머니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너 혹시 오늘 시간 있니?"
"왜?"
"창고 정리하다가 이상한 걸 찾았어."
퇴근 후 곧장 친정집으로 갔다.
식탁 위에는 오래된 나무상자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결혼하고 이사 올 때부터 있던 건데."
"누가 둔 거야?"
"고모도 모르고 외할머니도 모르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오래된 회중시계 하나와 편지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열려 있지 않았다.
겉면에는 단 한 줄.
'그 아이가 스물여덟이 되면.'
내 손끝이 떨렸다.
나는 올해 스물여덟이 되는 해였다.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편지 대신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젊은 어머니였다.
지금의 아버지와 결혼하기 훨씬 전으로 보였다.
그 옆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선명했지만 이상하게 아무리 바라봐도 기억에 남지 않는 얼굴.
시선을 돌리는 순간 어떤 모습이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평범한 얼굴이었다.
사진 뒤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하지만 나는 규칙을 어겼다.'
나는 숨을 삼켰다.
어머니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 누구야?"
어머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모르겠어."
"같이 찍었잖아."
"그러니까 이상한 거야."
사진을 보는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분명 내가 찍힌 사진인데..."
"..."
"왜 이 사람 얼굴이 기억이 안 나지?"
그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돼..."
"엄마?"
"...생각하면 안 돼."
"무슨 말이야?"
"생각하려고 하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꾸 없어져."
그 말이 끝나자 거실 전등이 일제히 꺼졌다.
정전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휴대폰 화면만 희미하게 빛났다.
발신자 표시 제한.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거기 가지 마."
"어디?"
"그 상자."
"이미 열었어."
전화기 너머에서 긴 한숨이 들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도대체 당신은 누구야?"
처음으로 그가 대답했다.
"나는..."
그 순간 통화가 거칠게 끊기며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소음이 들렸다.
이어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갑고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관측 대상 731."
"불법 개입 확인."
"기억 봉인 실패."
"회수팀을 파견한다."
순간 전화가 완전히 종료됐다.
동시에 창밖에서 검은 승합차 한 대가 천천히 집 앞에 멈춰 섰다.
차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내렸다.
모두 같은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내 심장은 멎을 듯 뛰기 시작했다.
그는 사진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서 있던 남자였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단 하루도 늙지 않은 얼굴.
그는 집을 올려다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이번에는... 너를 데리러 왔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내 삶을 따라다니던 모든 기적과 불행,
설명되지 않던 모든 우연은 하나의 거대한 원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원의 중심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누군가는 나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거슬렀고,
누군가는 그 시간을 원래대로 되돌리려 했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단 하나의 진실이 남아 있었다.
내가 태어난 것은 기적이 아니라,
누군가가 어느 세계의 규칙을 깨뜨린 결과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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