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을 그리며

제1회 발신자 없음

갈등하는 젊은이 2026. 8. 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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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있지 않냐?
시간은 많은데 왠지 할 일은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천장만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을 때.
괜히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별 볼 일 없는 알림을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그런 날.
신기한 건 그럴 때 전화가 오면, 순간 머릿속으로 이름들을 훑어본다는 거다.
'엄마인가?'
'회사에서?'
'친구?'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상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표시 제한.
잠시 망설였다.
요즘 광고 전화도 많고 보이스피싱도 많으니까.
하지만 이상했다.
왜인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몇 초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끊을까 하는 순간.
"늦었네."
낮고 담담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뭐가 늦었다는 거죠?"
"네가 전화를 받을 줄 알았는데."
"누구세요?"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상한 말을 했다.
"커피 식는다."
나는 피식 웃었다.
"저 오늘 커피 안 마셨는데요."
"아니."
잠시 침묵.
"네 책상 오른쪽."
순간 몸이 굳었다.
고개를 돌렸다.
책상 오른쪽에는 몇 시간 전에 사 놓고 그대로 잊어버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었다.
얼음은 이미 다 녹아 있었다.
"...누구세요?"
이번에는 상대가 웃었다.
작게.
아주 작게.
"드디어 확인했네."
등골이 서늘했다.
집 안을 둘러봤다.
커튼도 쳐져 있었고 창문도 잠겨 있었다.
혼자였다.
분명 혼자였다.
"장난치지 마세요."
"장난?"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부터는 장난칠 시간이 없어."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 단체방에 올려 봤지만 모두 모른다고 했다.
휴대폰 번호를 조회해 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발신자 표시 제한.
그게 끝이었다.
며칠이 흘렀다.
나는 그 일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전화가 왔다.
밤 11시 17분.
같은 번호.
아니.
번호조차 없었다.
"이번에는 받지 말까."
하지만 이미 손가락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여보세요."
이번에도 같은 목소리.
"창문."
"...뭐요?"
"당장 창문에서 떨어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창가에 기대 서 있었다.
왜 그걸 알고 있지?
의문이 떠오르는 순간.
쾅!
창문 밖으로 거대한 간판 하나가 떨어졌다.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파편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불과 한 걸음만 더 가까이 있었어도 머리를 그대로 맞았을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가 말했다.
"이번에도 살았네."
"...당신 누구야."
긴 침묵.
그리고.
"나도 너다."
통화가 종료됐다.
 
그날 이후 전화는 규칙적으로 걸려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버스를 타지 마."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
"오후 세 시에 오는 택배는 열지 마."
처음에는 미친 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버스는 추돌 사고가 났고.
엘리베이터는 정전으로 멈췄으며.
택배 상자는 주소를 잘못 적은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다.
나는 두려움보다 궁금증이 커졌다.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정말 미래를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내 주변을 감시하는 사람일까.
결국 나는 역추적을 시작했다.
통신사.
경찰.
사설 탐정.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결과는 하나였다.
'발신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전화.
존재하지 않는 번호.
하지만 분명히 울리고 있었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처음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
"무슨 일이야?"
"이번에는 절대 나가지 마."
"왜?"
"...오늘 네가 죽는 날이니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나는 집 문을 잠그고 하루 종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가 졌다.
밤 열한 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물을 마시려고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보낸 사람.
'나.'
내용은 단 한 줄.
'뒤를 돌아보지 마.'
숨이 멎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이상하다.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하고 싶어진다.
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실 한가운데.
누군가가 서 있었다.
나였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보다 스무 살은 더 늙은 나.
깊게 팬 주름.
희끗한 머리.
그리고 평생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처럼 새까맣게 꺼진 눈.
그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내 전화번호가 화면에 떠 있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야... 연결됐구나."
그 순간 내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
나는 화면과 눈앞의 노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벨소리는 계속 울렸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지난 한 달 동안 내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누군가가 아니라...
수십 년 뒤의 내가, 필사적으로 과거의 나를 살려내려 했다는 사실을.
그런데 누가 믿어 주겠냐 내가 이런 얘길 해봐야
어짜피 미친놈 치급하겠지
내가 나를 만났다니 ...
언젠가 나와 똑 같이 생긴 누군가를 보면 죽는다고 하던데...
젠장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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