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방콕 돈무앙 공항(그 당시 수완나폼은 없었음 ㅎㅎㅎ 아~ 아재요) 그리고 뉴델리 공항으로 이동하는 중에 같은 비행기를 타고 내린 친구들을 만났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우리들은 금방 서로가 필요함을 직감했고 함께 공항항을 나서려다 너무 늦기도 하고 공항입구에 무섭게 몰려있는 로컬들을 뚫고 지나갈 자신이 없어 공항에서 1박을 하기로 하고 무작정 자리를 잡았다.
2004.10.23.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일행들과 공항에서 자리깔고 누워 버렸다.
밤엔 공항 밖을 나가지 말라는 건 인도 여행객들의 수칙이닷...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위험할 것도 없는 것인데...
공항에서 자리 깔고 누운 우리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현지인..
우리 주윌 두리번 거리고 처다보는 창밖의 사람들...
첨엔 너무 떨렸다. ... 걱정도 되고...
하지만 익숙해지면 그런 것들도 잼있다. ^^
from cyworld
군대가기 전에 여행을 온 두친구와 의대본과 진학전에 여행을 온 친구들 그리고 나 5명의 초보 여행객... 낮선 땅에서 만나서인지 첨음 만났지만 같은 국적인이란 사실 만으로도 금방 하나가 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 서로 공유하는 배경이 없는 사람들을 만난 다는 것이 일상 속에서는 쉬운일이 아니지만 여행 중에는 늘 이러한 즐거움을 조우하게 된다. 하나 하나 새로운 인연을 만날 때 마다 새로운 책을 한권 한권 만나 듯 많은 이야기와 경험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뉴델리 여행자의 거리인 빠하르간지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길거리에서 우리 마냥 노숙을 하고 있는 엄청난 인파에 무슨 큰 재난이 일어났나 싶었지만 그 풍경은 그들의 일상이었고 그것을 이상하게 바라 본 내가 이상한 외국인이었다. 피부병에 걸린 듯 털이 듬성 듬성 빠져있는 덩치 큰 개들도 내 눈에는 불안해 보였으나 방금 잠을 깬듯 길에서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그들에게 반려견인 듯 가까워 보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정겨워 보였다. 나는 첫 여행이라 달랑 25리터 배낭하나 메고 붙이는 짐도 없이 인도로 와서 걸아가는 길 내내 걸음이 가벼웠지만 꽤 여행을 다녀본 이들의 캐리어는 정돈되지 않은 뉴델리 커리에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길거리엔 개와 소와 멧돼지 처럼 생긴 돼지들이 돌아다녔고 각종 배설물과 쓰레기 그리고 시궁창에서나 볼만한 오수들이 곳곳에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여긴 이나라 수도인데 왜 이럴까? 내가 잘 못 찾아온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파고 들었다. 자꾸 들러붙어서 릭샤왈라들과 숙소를 소개해주겠다는 패들 그리고 점점 더워지는 아침 햇살까지 고단함이 물밀듯 밀려오고 있었다.
예약이고 뭐고 하는 시스템이 없는 지라 무작전 여행책자에서 추천하는 몇몇 게스트하우스를 둘러봤지만 맘에 들리가 없었고 그후로도 대 여섯곳을 찾아다니다 한 곳을 정하고 짐을 풀었다. 출발하기 전까지 무수히 고민하고 걱정했던 것을 그 때 다 해결한 샘이었다. 일행을 만났고 인도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숙소도 잡고 짐도 풀고.... 하루 반나절만에 많은 것들을 이루어낸 느낌었다. 그냥 하면 되는 거였는데 왜 걱정하는데 시간을 낭비했을까 라고 맘속으로 되내이며 폭신한 침대에 잠시 몸을 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잠에 들어버렸다.
똑딱이 카메라 메로리카드 용량이 24메가라 많은 사진을 찍지 못했고 초반에 찍은 사진도 생각보다 길어진 2달의 여행으로 그 당시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여 지워버려야만 했던 때라 사진을 많이 없어 못내 아쉽다. 그나마 사진기도 잃어버려 싸이월들에 업로드 시켜놓은 사진이 전부인데 몇 키로바이트 사진으로 그 시절 기억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인도는 묘가 마치 궁전처럼 화려하다. 아래 있는 사진은 후마윤 묘 or 무덤 아무튼 죽은 자를 안치한 곳인데 타지마할과 더불어 인도에서 건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굉장히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방문하였다. 가는 도중에 오토릭샤 기사와의 흥정부터 도착하지도 않고 이상한 곳에 세우고 다왔다고 내려주고 다시 실랑이하고 하는 사소한(?) 인도여행기는 패스하고 후마윤 무덤에 대해 잠시 알아보면....
후마윤 무덤의 설명(UNESCO homepage에서 퍼왔어요.)
무굴(Mughal) 건축양식의 초기 발생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후마윤의 무덤은 무굴 건축사에서 이정표 역할을 한다. 제방과 수로가 있는 현존하는 무굴의 정원식 무덤의 전형으로 알려졌다. 후마윤의 무덤은 이중구조를 이루는 돔과 장대한 키오스크(kiosks)로 이루어진 대표적 건축물이다. 이러한 양식은 1세기 후에 완성된 타지마할에서 극치를 이룬다. 이러한 양식의 최초로 규격화된 작품임에도 후마윤의 무덤은 건축학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인도 무굴 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의 무덤은 후마윤의 미망인인 비가 베굼(Hajji Begum) 왕비가 후마윤이 죽은 후 14년 뒤인 1569년~1570년에 150만 루피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설하였다. 건축가는 미라크 미르자 기야트(Mirak Mirza Ghiyath)이다. 이후 많은 통치자와 그들의 권속들의 무덤이 되었고 현재 150구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이곳을 예부터 무굴 왕조의 공동묘지라고 불렸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2004.10.25.
이제 거의 다 올렸다.
남은 사진의 수가 줄어들 수록 더 늘어만 가는 추억들..
그때 여행을 포기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아서...
지금도 밀려오는 걱정과 불안으로 접으려는 것들..
다 떨처버려야겠다.
다시 웃을 날을 기약하면.... 훌훌.....
from cyworld
무덤은 거대한 정원 한가운데에 있다. 정원은 수로로 연결된 연못들이 있는 차하르바그 양식(char baah, 네 겹)으로 이루어졌다. 정문은 남쪽에 있으며 서쪽에 또 다른 출입구가 있다. 동쪽 벽과 북쪽 벽 중앙 부분에 각각 정자와 목욕탕이 있다. 단독 묘는 높직한 넓은 계단식 기단 위에 놓였으며 사방에 아치형의 작은 묘실이 딸려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4면은 길고 4면은 짧은 불규칙한 팔각형이다. 높이 42.5m의 대리석으로 만든 이중 돔을 무덤 꼭대기에 얹었고 그 옆에는 기둥 측면에 장식을 한 키오스크(chhatris)가 있다. 이들 한가운데는 거대한 둥근 아치 천장으로 덮였고 아치 천장 주변에는 더 작은 아치 천장들이 서로 마주보게 배치되었다. 실내 구조는 따로따로 구분된 아치 천장이 덮고 있는 거대한 팔각형 방으로 갤러리와 통로로 서로 연결되었다. 이 팔각형의 구조는 2층에서 다시 나타난다.
내부는 장식한 돌로 만들었으며 대리석 가장자리에 흑백 무늬를 새겨 넣은 적색의 사암을 입혔다. 구내에는 이 밖에도 후마윤의 무덤 남동쪽에 세련된 정사각형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1590년〜1591년에 만들어진 ‘이발사의 무덤(Barber’s Tomb)’으로 알려졌다. 무덤과 주변 구조물은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근대의 손길을 최소로 받아 최고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무굴 건축의 발달사에서 후마윤의 무덤이 지니는 중요성은 실로 크다. 후마윤의 무덤은 장기간에 조성된 최초의 왕의 무덤이며 여러 면에서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원식 무덤을 인도 아대륙에 전파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후마윤은 이슬람 세계로 폭넓은 여행을 했으며, 특히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를 다녀온 후 자신의 무덤에 건축예술을 도입할 생각을 품었다. 결국 미망인의 지시에 따라 이 무덤에 후마윤의 생각을 적용하였다. 후마윤의 무덤은 역사적으로도 가치를 존중받았으며, 그 덕분에 원래 상태대로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성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누군가의 묘를 짓기위해 누군가는 또 착취를 당하였을 테고 그 아픔의 역사 뒤에 후세들은 이 유적을 통해 또 돈을 벌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삶의 굴레와 업과 보과 뒤섞여 현재에 전해지고 있는 듯 하다. 이 당시 불만은 현지인들에 비해 외국인들에게 받는 관람료가 수십배 비싸다는 것과 시간이 지날 수록 까맣게 변한 나를 보고 어짜피 인도인 끼리도 말이 안통하니깐 시킴주에서 왔다고 하고 내국인 돈만 내고 들어가보라는 권유를 듣고도 기분이 나쁘기 보다는 혹한 나 자신이었다. 여행 막바지엔 통 먹지를 못해 59키로 까지 살은 빠져갔으며 피부는 점점 명도0에 수렴해가는 나를 보면 내가 봐도 내가 아니였다.
2004.10.23.
더운 날... 너무 더운 날...
40루피 주고 온 곳인데...
너무 볼게 없었다.... 그래도 하하하
잘갔다. 더위에 지쳐 한번 포기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포기를 낳기 때문이지...
귀찮아도 더 열심히 돌아 다닐껄... 이란 생각이 지금 쫌 든다.
form cyworld
인도를 갔다면 간디 기념관은 또 빠뜨릴 수가 없어서 어렵게 물어 물어 찾아갔다. 그당시는 몰랐지만 간디의 어린 소년 소녀들에 대한 기행과 여타 이야기가 있어 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현지인들에게는 큰 사람으로 남아있고 공과 중 공이 더 크게 여겨지고 있었다. 그당시를 살지 않은 외국인의 시점에서 그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어쨌든 인도하면 간디가 생각나니...
2004.10.23.
사진기만 꺼내도 엄청난 인파가 달려든다.
이슬람 사원 안에서 현지인들과 다투고 나가려는데 우리 주위에 한무더기의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설전끝에 무사히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기분이 씁쓸한건 어쩔 수가...
외국인들에게 사기 치려는 현지인들 때문에 인도의 이미지가 더더욱 나빠진다.
그래도 왠지 모를 그리움을 드리우는 나라이다.
from cyworld
이슬람 사원에서 시비를 거는 현지인들을 피해서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내 목에 걸린 MP3플레이어와 손에 든 사진기는 어디 가든 관심에 대상이 될 때였다. 하기야 한국에서도 MP3 플레이어는 흔하지 않을 때이긴 했지만 이렇게 몰려들어 "이거 뭐냐 ?" "진짜 음악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냐?" "거짓말하는거 아니냐?" "사진 좀 찍어달라" 등등 지나가는 족족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들이었다. 대부분의 이들이 어디서는 신기하게 바라보고 말걸고 하는 것들이 너무 부담스러웠지만 어느덧 그려려니 하게되는 타이밍까지가 적잖히 버거웠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맥도날드를 찾아가는 중 악기파는 아저씨가 멋진 피리연주를 들려 주셨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구매의사가 없어 보였고 민망한게 연주만 듣다가 어색한 웃음을 남기며 뒤돌아 섰는데 뒤돌아 가는 동안에도 피리소리는 끊기질 않았다. 그리고 도착한 맥도날드에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인도 맥도날드에는 치킨버거만 팔고 있다는 사실을... 소고기야 힌두교 때문에 없을거고 돼지고기는 왜???라고 생각했지만 이슬람인들도 적은 비율이지만 다수가 살고 있고 해서 돼지고기도 없습니다. 양고기를 햄버거로는 안 만드는 것 같고 어쨌든 치킨버거만 있어 매뉴고르기는 참 쉬웠다.
2004.10.25.
실제로 보면...1.9배 더 이쁘다.
전기가 모자라 맨날 정전되면서... 우찌 이런데 불을 켤까?라는 생각이 먼저든 곳..
낮에도 이뻤지만 밤엔 더 아름다웠다.
주위에 시커먼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우릴 처다본거만 빼면.. 여행초반이라 쪼금 긴장했다.
일행 찾아 혼자 인디아 게이트 돌아다닐땐...ㅋㅋㅋ
괜한 걱정이란걸 안건 그렇게 오래걸리지 않았다.
세상엔 나쁜 사람들 보다 착한 사람들이 훨씬 훨씬 심하게 많다.
그점은 불문으로 하고....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진 않아도 위험하다. 특히 밤에는....
from cyworld
길에서 오다 가다 우연히 만난 분들과 밤에 유독 이쁘다는 인디아 게이트까지 단체로 우루루 가서 안전하게 구경하고 왔다. 밤에는 절대 나다니지 말라고 이곳 저것에서 당부를 하셨는데 7명이 어디든 못 갈 데가 없지.. 빠하르 간지로 돌아와 유명한 망고라시 아저씨의 라시 한잔씩 먹고 들어가서 꿀잠을 잤다. 자이살메르로 향하기 전까지 함께 해준 원주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고 그 뒤로도 함께 해준 친구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몇번 만났는데 군대 간 이후로는 연락이 끊겨버렸다. 뭐 세상이 그렇듯 인연이 있다면 길 위에서 다시 만나겠지!!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해도(北海道) 도야호수와 노보리베츠 (0) | 2024.10.08 |
---|---|
사막에서의 낙타사파리 in 자이살메르 (0) | 2023.07.04 |
사막도시 자이살메르(Jaisalmer)로 향하다. (0) | 2023.06.19 |
세상 밖은 또 다른 세상의 시작이었다. (0) | 2023.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