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영화– 학창시절과 첫사랑을 다시 불러낸 이야기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순간을 대표하는 영화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요?
저에게는 바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가 그렇습니다. 일본문화 개방전 대학가 축제 때 불법(?) 해적판으로 상영해서 국내 정식 개봉된 1999년 전에 명작으로 소문이 났었죠.
겨울의 눈 덮인 풍경 속에서 “오겡끼 데스까? 와타시와 겡끼 데스!”라는 목소리가 메아리칠 때, 제 마음도 알 수 없는 울림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학창시절의 풋풋함과 첫사랑의 아련함을 그대로 스크린 위에 옮겨 놓은 듯했기 때문입니다.

잊고 살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불러오다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다가왔던 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기억의 힘”이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학창시절의 친구들, 그 시절의 설렘, 누군가를 바라만 보던 가슴 두근거림을 잊고 지내기 마련이죠. 그런데 <러브레터> 속 주인공들이 과거를 더듬어가며 잊었던 순간을 다시 맞이할 때, 마치 제 안의 오래된 기억들도 함께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왜 그 마음을 끝내 전하지 못했을까?”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제 삶의 한 조각을 꺼내 보게 만든 타임머신 같았습니다.
첫사랑, 말하지 못한 마음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조금은 아픈 기억으로 남습니다.
말하지 못해 더 깊었던 감정, 서툴러서 놓쳐버린 순간들. <러브레터>는 그 묵직한 감정을 참 맑고 조용하게 담아냈습니다. 화려한 사건이 없어도, 눈빛과 편지 몇 장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죠.
저 역시 학창시절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영화 속 장면들을 보며 그 기억이 떠올랐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러브레터와 닮은, 또 다른 영화들
<러브레터>가 제 마음속 특별한 영화인 건 분명하지만, 비슷한 감정을 건드렸던 작품들도 있습니다.
-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 일본)>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기적처럼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잔잔한 눈물을 안겨줬습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하는 아쉬움과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준 영화였습니다. - <건축학개론(2012, 한국)>
한국판 첫사랑 영화의 정석이죠. 학창시절 첫사랑을 잊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하는 순간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며 학창시절의 풋풋했던 감정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 <리틀 포레스트(2014, 일본 / 2018, 한국 리메이크)>
비록 사랑이 중심은 아니지만, 잊고 지냈던 나의 어린 날, 그 시절의 따뜻한 시간들을 되새기게 해 준 작품입니다.
이 영화들은 모두 “잊고 있던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들을 볼 때마다, 제 안에 묻어두었던 학창시절과 첫사랑의 추억을 꺼내 보곤 합니다.
잊지 못할 장면들
<러브레터>에는 단순한 대사보다도 더 강렬하게 남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장면들이 빛으로 기억 됩니다.
그중 하나는 등교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소녀 후지이 이츠키에게 소년 후지이 이츠키가 종이봉투를 씌우는 장면이었죠. 어린 시절, 장난스럽지만 풋풋했던 감정이 그대로 묻어 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장면은 그냥 휙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여주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무심하척 기다리고 있었을 소년의 두근두근한 심장의 떨림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너무 서툴고 엉뚱했죠. 하지만 오히려 그 서투름이 첫사랑의 본질이 아니었을까요?

또 하나는 하얀 커튼 뒤에서 후지이 이츠키가 책을 읽는 장면입니다. 커튼에 비친 소년의 모습을 마치 현실과 꿈 어느 중간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소녀, 기억과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아련한 경계를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흔들리는 커튼과 하얀 빛 그리고 살랑이는 바람이 스티고간 소년의 얼굴은 캬~~ 그 실루엣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하고 설레는 감정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자전거 페달을 돌려 불을 밝히며 책을 읽는 모습이었습니다. 힘들게 패달을 돌려 붉을 밝히며 왜 여기서 읽고 있지라는 의문을 가지지만 열심히 불을 밝히는 소녀와 그 시절에만 있던 아날로그 방식의 조명기구를 통해 좀 소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소년, 요즘의 디지털 시대에 스위치 하나면 어둠을 밝혀주는 세상에선 찾기 힘들어진 감성 터지는 장면입니다. 눈부시게 환하진 않지만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그렇게 은은한 빛처럼 켜지고, 또 그러한 빛이 마음속에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영화는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이 영화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장면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여지 주인공이 하얀 순백의 눈 위를 하염없이 걸어가며 저 멀리 산을 바라 보고 이렇게 외치는 장면을 것입니다. “오겡끼데스카~ 와타시와겡키데스~~~”

이런 장면들은 대단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이 없어도,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학창시절, 누군가를 좋아하며 느꼈던 작은 순간들이 바로 이런 아련함과 먹먹함 같은 장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러브레터>를 다시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시간이 흘러도 그 시절의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잊고 살 뿐, 영화나 음악, 혹은 어떤 계기를 만나면 여전히 생생하게 되살아나죠.
그래서 저는 오늘도 가끔 그 대사를 되뇌어 봅니다.
“오겡끼 데스까? 와타시와 겡끼 데스.”
그리고 속으로 답합니다.
“나도 잘 지내고 있어. 하지만 네가 남겨준 추억 덕분에, 오늘은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
그 시절 함께 이 영화를 본 그 기억도 따뜻하네요 ㅎㅎ